중국 소수민족의 형성
2004-04-08 00:00


일반적으로 말해 현대의 민족은 모두 고대민족이 변화발전하여 형성된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 있는 55개 소수민족들은 다 자기 민족의 기원을 찾을수 있다. 민족의 기원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이다. 어떤 민족은 그 기원에 대한 결론이 있지만 아직도 일부 민족은 결론이 없으며 흔히 여러가지 론법들이 있다.

◎조선족: 대부분이 19세기 20년대이후에 조선에서 육속 옮겨와 정착해 살면서 지금의 조선족을 형성했다.


◎몽골족: 일부 사람들은 흉노족과 관련된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당왕조시기의<몽올실위>에서 왔다고 인정,송왕조시기에 와서는 또<맹고><몽골><몽고리>등 각이한 이름이 있었다.<몽올실위>는 실위족의 한갈래다.실위족은 북위 왕조시기에 눈강과 흑룡강 량안에서 살았는데 5개 종족이 있었다. 당왕조 시기에 실위족은 20여개 종족으로 나뉘였다.어르구나강 일대에서 산 종족이 바로 몽올실위다. 몽올실위는 기원 7세기에 서쪽으로 이동하여 몽골초원에 이르렀다. 12세기 송왕조시기에 몽골초원과 바이깔호 일대에는 몽골종족외에 또 따따르,옹젤,매르기드,에럿트,크레드,나이만,오아구드 등 많은 종족이 있었다. 13세기초엽에 몽골종족의 칭기스한이 몽골초원의 여러 종족을 통일하였으며 서로 융합되여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이를 몽골종족의 이름으로 명명하여<몽골>이라고 불렀다.


◎만족:2천여년전 상,주 왕조시기의 숙신과 한,진 왕조시기의 읍루로부터 왔다는 견해가 있는데 만일 직접적인 근거를 찾는다면 만족은<흑수말갈>로부터 왔다고 수 있다.

흑수말갈은 말갈족의 한 종족,말갈족은 수,당왕조시기에 송화강과 목단강, 흑룡강 류역에서 살았다. 원래는 많은 종족이 있었는데 후에는 속말,백돌,안차골,불날,호실,흑수,백산 등 7개 종족으로 변화발전하였다. 그후 발해국이 흥성할 때 일부분의 흑수말갈 사람들이 발해국에 귀속되였다. 요왕조(거란)가 발해국을 멸망시킨후 흑수말갈사람들은 요왕조의 통치를 받았다. 거란인들은 말갈인을<여진>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이 부분의 말갈인들을 여진이라고 개칭하였다. 요왕조시기에 여진족은 생여진,숙여진으로 갈라졌는데 송화강 이북으로부터 동쪽의 대해까지 이르는 지역에서 산 여진족을 생여진이라 하고 송화강 이남에서 산 여진족을 숙여진이라 하였다.생녀진가운데의 한 종족을 완안종족이라 하는데 그 종족의 수령 아구타가 1115년에 금국을 세웠다. 후에 원왕조가 금국을 멸하자 여진족들은 흑룡강과 송화강류역에 녈려 살았다. 명왕조에 이르러 여진족가운데 흑룡강의 의란일대에서 산 사람들을 건주여진이라 하였다. 그들의 수령 누르하치가 17세기 초엽에 여진 각 종족을 통일하고 후금정권을 세웠다.1635년에 청태종 황태극은 여진이란 이름을 만족으로 고쳤다. 하여 여진족의 이름은 점차 만족으로 변했다. 1636년에는 국호<후금>을<청>으로, 즉 청왕조로 고쳤다.


◎티베트족: 기원 7세기 때 토번은 왕조의 이름이기도 고 민족이름이기도 하였다. 그럼 토번의 선인은 또 어떤 민족인가? 역사기록에 의하면 한왕조 때 티베트 북부지역에 바챵이란 종족이 있었는데 이는 챵족의 한갈래였다. 당시 청해와 감숙의 황하,황수 일대가 챵족의 거주중심지였다.동한왕조와 챵족간에 벌어진 대규모적 전란은 챵족의 소당챵종족과 미당종족으로 하여금 바챵지역으로 이사하게 했다. 이와 동시에 티베트 산남지역에는 야릉이란 종족이 있었고 티베트 북부와 청해성 서북부에는 양퉁이란 종족이 있었다. 스름브와 양퉁은 다 챵족의 한갈래였다. 7세기 초엽에 야릉종족이 스름브와 양퉁 등 종족을 합병하고 토번정권을 세웠으며 바챵,스름브,양퉁 등 종족은 다 토번에 동화되였다. 이로 부터 알수 있는바 티베트족은 티베트의 토착민인 야릉인 등과 챵족이 서로 융합되여 이루어 진것이다.


◎쫭족: 진,한 왕조시기에 있었던 월족이 그 기원으로 된다는 견해가 비교적 보편적이다. 당시 월족은 장강 중하류와 영남(지금의 광동,광서,운남 등지)지역에서 살았는데 그 종족이 아주 많았으므로<백월(百越)>또는<백월(百粤)>이라고 하였다. 위,진,남북조 시기에 광동,광서 지역의 소수민족을<오호><리><요>라고 불었다. 당왕조때는<리료>또는<만료>라고 불렀다. 각이한 이 이름들은 다 쫭족의 옛 이름이다. 송왕조 시기에 력사서적에 나오는<당><동><총>은 한어로 모두<쫭>이라 읽는다. 1965년에 쫭족인들의 소원에 따라 그리고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동>을 일률로<쫭(壮)>으로 고쳐 지금의 이름으로 되였다.


◎부이족: 진,한왕조시기에 있었던<백월>족의 한갈래인 낙월이 그 기원이라고 인정하는것이 일반적이다. 서한시기의 야랑이 부이족과 연원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는 학자도 있다.


◎위글족: 한왕조때의 정령족과 당왕조 때의 회흘족이 위글족의 주요한 기원이라는 견해가 비교적 보편적이다. 서진,동진 그리고 남북조 시기에 정령을 치?l야라고 불렀으며 그들이 바퀴가 큰 차를 타고 다녔으므로 고차라고도 불었다. 그들은 주로 바이깔호 이남지역에서 살았는데 유연족과의 전쟁으로 하여 치?l야인의 일부분은 기원 492년에 서쪽의 천산일대로 옮겨갔다. 그리하여 동부와 서부 치?l야로 갈라졌다. 동부 치?l야의 한 종족을 오흘 또는 오호라 불렀고 서부 치?l야의 한 종족을 원흘 또는 위흘이라 불렀다. 그들은 다른 일부 민족들과 융합되여 변화발전,6세기초엽에 와서는 회흘이라고 불리웠다. 주로 어르훈하 류역에서 산 그들은 당왕조 시기에 강대한 회흘한국을 세웠었다. 788년에는 회흘을 회홀로 고쳤다. 9세기 중엽에 회흘이 샤쟈스인에 의해 멸망되자 그들은 세갈로 나뉘여 서쪽으로 옮겨갔는데 투루판분지로 옮겨간 사람들을 고창회홀,총령이서로 옮겨간 사람들을 총령회홀,하서주랑으로 옮겨간 사람들을 감주회홀이라 불렀다. 한마디로 대부분이 서역(지금의 신강>지역으로 이주.이 부분 사람들과 당시 서역에서 산 조돌궐,언기,귀자,우전어 사람 그리고 원래 서역지역으로 옮겨가 산 한인,거란인,몽골인 등과 장기간에 걸쳐 융합되여 위글족으로 되였다.

◎이족: 먼 옛날에 있은 저강인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서남지구의 저강종족과 다른 일부 종족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는 가운데서 서로 융합되여 이루어졌다고 인정.이족은 기원 7세기 때의<오만>족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견해가 비교적 보편적이고 그 근거가 많다. 이족은 원왕조 때부터 해방(1949년)초기까지<라라>등으로 불리웠다. 이렇게 불리운 사실은 원,명,청,민국의 역사서적에서 다 찾아볼수 있다. 당왕조의 역사서적에는<오만>족 가운데 7개 종족이 있었는데 대내적으로는 이러저러한 이름이 있었으나 대외적으로는 일률로<로록>이라 불렀다고 기재.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락란>이란 바로<로록>으로서 다만 번역해 쓴 글이 다를뿐이라고 인정한다. 이것은<오만>인 중에 이족의 선인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어떤 사람은<오만>족의 어휘와 현대 이족의 어휘가 공통점이 많다는것을 연구했다. 이는<오만>인 중에 이족의 선인이 있었다는 증거를 제공해준다.


◎묘족: 요,순,우 시기의<남만>족 계렬의<삼묘>족이 묘족의 선인이라는 설법이 있는가 하면 은왕조,주왕조 시기의<모>인이라 하는 견해도 있다. 이 두가지 논법의 공통점은 발음이 비슷한<묘><모>를 이론근거로 한것이다. 삼묘와 묘족이 풍속면에서 비슷한 점들이 있기는 하나 위의 두가지 논법은 다 직접적 근거가 부족하다. 비교적 충분히 역사자료로 증명할수 있는것은 진왕조,한왕조 시기의<오계만>.그들은 지금의 호남성 서부와 귀주성 동부 지역에서 살았고 그때 그곳에는 다섯갈래의 강이 있었으므로 오계만이라고 불렀다. 여기에다 선후하여 금중군과 무릉군을 세운적이 있으므로<금중만><무릉만>이라고도 불렀다. 오계만에는 요족의 선인을 망라하여 적지 않은 민족이 망라되여 있었으며 그 대부분이<반호만>즉 반호(신견)를 토템으로 삼는 민족이였다. 현대의 써족,요족,묘족 중의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반호에 관한 신앙과 전설을 가지고 있다. 당왕조,송왕조 시기에 오계지역의 일부 소수민족들을<묘인><묘중>이라 불렀으며 남송이후 사람들은 오계만 중의 다른 민족들 예하면 요족,료족,흘령족,거로족과 묘족을 점차 갈라놓았다. 하여 묘족이란 이름으로 확정되였다.


◎회족: 회족은 한두개의 주요한 민족에서 온것이 아니라 명왕조때 각이한 여러 민족이 융합되여 형성된 민족이다. `회족은 회회민족의 약칭이다. 대략 7세기 중엽부터 일부 아랍사람들과 페르샤 사람들이 중국에 와 상업을 경영하면서 점차 광주,천주,항주,양주 등지에 정착,이들을<번객>으로 불렀다. 13세기 초에 몽골군대가 서정할 때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페르샤인,아랍들이 강제로 혹은 자원적으로 중국에 많이 이주,각지에 널려 살게 되였다. 이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를 신앙,원왕조 관방 문서에는 그들을<회회>라고 불렀다. 통혼과 경제 및 문화적 연결로 하여 이<번객>과<회회>들은 한족,몽골족,위글족 등과 융합되고 발전되여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 회족을 형성했다.